사랑의 나라로 _ 송하라 이른둥이 이야기

사랑의 나라로

송하라 이른둥이 이야기

  

함박웃음을 짓는 송하라 이른둥이

  

 

송하라 이른둥이

 

  

중국 청도에서 나고 자란 메이린(가명). 회사에서 만난 한국인 박은수(가명) 씨와의 사랑으로 그녀는 그예 고향에서 그와 혼인의 언약을 맺었다. 그 결실로 아들인 하진(가명. 이른둥이) 또한 하늘로부터 선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겨웠던 시절도 잠시, 메이린은 은수 씨가 펼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고향을 뒤로 한 채 700㎞ 남짓, 남편을 따라 그의 나라인 한국으로 떠나와야만 했다.

 

물론 그들의 아들인 하진이도 함께였다. 정말이지 당장 경제적인 형편이 대단히 힘겨웠지만, 그렇기에 메이린은 화훼단지에서 꽃을 가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더 열과 성을 다해 타국살이를 살아냈다. 그즈음이었다. 메이린의 배 속에는 둘째 자녀인 하라(가명)가 잉태되어 머물러 있었다…….

 

오직 하나로 뭉쳐 불길 같은 삶을 동행하다

 

2011년 여름 무렵 사납게 비가 퍼부었다. 하천이 범람했다. 물길은 무성한 잡초 사이로 하천 지척에 덩그러니 자리한 메이린의 집을 덮쳤다. 수마(水磨)는 문틈으로 하염없이 새어 들어왔다. 메이린은 더는 버틸 정신력이 없었다. 집 안으로 침입한 물 때문인지, 중국 청도를 그리는 향수 때문인지, 처연하도록 고단한 아르바이트 때문인지…… 그날부터 메이린은 하라를 밴 배가 아파 오며, 혈압도 오르는 듯싶더니 머지않아 쓰러지기까지 이르렀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몸이 안 좋았어요. 아기로 인한 진통은 없었는데 위험한 상황이라 병원에서 보호자 사인도 없이 응급 수술로 하라를 출산해야 됐어요. 아마 그 과정에서 하라가 다친 것 같아요.”

 

▷ 하라는 척추로 몸을 곧추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집에서도 종종 맞춤형 보조기구에 앉아 자세를 교정해야 한다.

 

34주째에 1.78kg의 이른둥이로 태어난 여아, 하라. 호흡 곤란에 기인한 뇌 손상인 듯 하라는 안타깝게도 뇌병변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이 잔인한 현실에 메이린은 속상해서 한동안 매일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나, 언제까지 넋 놓고 울 수만은 없는 법. 메이린은 하라도 붙들어야 했고, 하진이도 돌봐야 했다. 남편은 당연히 경제적인 활동에 전념해야 했으니 자녀들을 보살피는 시간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다만, 홀로 두 아이를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때 중국의 친정 엄마가 우리랑 같이 지내기로 했어요. 여기서 하라랑 하진이도 함께 봐주고요. 월세지만 이사도 올 수 있게 돈도 빌려 줬어요. 중국의 언니도 빌려 주고요.”

 

다행히도 메이린은 친정의 도움으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그머니 비켜날 수 있었다. 부부의 대출금만으로는 부족했던 차에 친정의 배려로 이전보단 나은 보금자리로 집을 터 잡을 수도 있었다. 눈물겹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자면 이 쓰라린 삶을 감내하기엔 여전히 숨 막히게 빠듯했고, 비단 그것은 비용적인 차원에 국한된 힘겨움만은 아니었다.

 

“하라 데리고 병원으로 외래 진료 다닐 때요. 종종 장애인 콜택시가 없으면 버스 타고 한 시간 넘게 나가야 돼요. 그것도 그렇고 하라가 밖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마구 소리를 지르거든요. 저도 같이 뛰어놀고 싶다고요. 그럴 때는 마음이 참 슬퍼요.”

 

한국어도, 중국어도 아닌 ‘사랑어’로 소통하다

 

하라가 성장한 지도 어느새 26개월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결코 만만치 않았던 세월이었다. 메이린은 사랑 그득히 하라의 병세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품안에서 딸을 양육했다. 그간 인근 복지관을 통해 접하게 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또한 크나큰 보탬이 되었다.

 

 

▷ 애교많은 송하라 이른둥이.
 

 

 

무엇보다 남편과 친정 엄마의 헌신이 없었다면 현재의 사정은 무척이나 달라졌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전전긍긍하는 남편. 한국말도 모르면서 딸 곁에 머물러 손자들을 챙기는 친정 엄마. 어쩌면 메이린은 모성애도 모성애지만 그들의 사랑에 힘입어 하라를 그토록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때로 남편보다, 친정 엄마보다 고맙고 미안한 존재는 아들인 하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하진이는 벌써 의젓하다 해도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하진이는 엄마가 놀아 주지 않는다고 가끔씩 눈물짓기도 했다.


“엄마, 동생이 아프니까 내가 봐주는 거야.”

 

아픈 건 하라였는데, 성숙한 건 하진이었다. 메이린은 하진이의 한마디가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한편으론 이다지도 믿음직스러운 아들이 있기에 내일을 걸어갈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에 친구 한 명 없는 한국 땅에서 살아가기가 말이다. 아들딸을 위한, 가족을 위한 소망을 품고서 그렇게.

 

 

“특히 바라는 게 있다면 하라가 나을 수 있을 때까지 빨리 다 낫고, 하진이는 숙제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우리 집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박한 듯 간절한 메이린의 세 가지 소원이었다.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이루지 않고는 절대 의미 없는 그 꿈들을 이루고자 메이린은 매순간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 봐도 메이린의 삶이란 사랑을 빠뜨리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메이린이 한국어를 몰랐고, 은수 씨도 중국어를 몰랐을 적에 시작했던 그 사랑, 그것으로 그녀는 낯선 이국에 뿌리내려 하라와 하진이를 더 사랑했다.

 

하라와 하진이, 두 아이는 다름 아닌 메이린의 ‘사랑의 나라’에 거주했다. 그 사실은 하라가 나서듯 증명했다. 누구라도 ‘사랑해!’, 머리칼 너머로 하트 모양 손짓을 그리면 하라는 화답으로 이마에 양손을 얹어 ‘나도 사랑해요!’ 몸짓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하라. 이처럼 엄마가 만든 사랑의 나라에 안식할 때 환아는 더 이상 아픈 아이가 아니라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차원에서 메이린의 꿈은 사랑의 나라로 인해 끝내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글. 노현덕 | 사진.정김신호

 

하라의 꼬까신

 

 

* 아름다운재단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기반으로 송하라 이른둥이에게 재활치료비를 지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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