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휴가_홍성호 이른둥이 이야기

10년만의 휴가

홍성호 이른둥이 이야기

  

 ⓒ 아름다운재단  홍명자, 홍동현 부부와 홍성호 이른둥이.

 

결혼을 하고 3개월 만에 아이가 들어섰으니 신혼을 즐길 틈도 없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30개월 만에 태어난 1.4kg의 성호를 기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외견상 문제가 없으니 폐만 형성되면 별 문제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마음 놓고 지내다 청천벽력처럼 뇌성마비 판정을 받던 9년 전 어느 날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성호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만 자랐겠는가. 스물아홉 살의 홍명자 씨는 서른아홉이 됐고, 서른하나이던 홍동현 씨는 마흔한 살을 맞았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마흔’을 사이에 둔 부부는 이제야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마주한 눈동자에 찰랑이는 고단한 시간들을 두런두런 얘기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지난 5월 4일에 ‘2013 이른둥이 가족캠프’는 그런 의미에서 설레고 또 따뜻했다. 홍명자&홍동현 부부가 스스로에게 주는 10년만의 휴가였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수용하다

 

ⓒ 아름다운재단

 

“3개월 일찍 태어난 성호를 뇌 초음파 해봤는데 이른둥이에게 많이 나타나는 백질연화증이라더라고요. 크게 염려할 게 없다기에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돌쯤 됐는데도 뒤집고 앉고 일어서기를 못하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너무 어려서 치료가 안 된다고 더 자라서 오래요. 그래서 2년 6개월 지나서 세브란스병원에 갔는데…”

 

얼마나 지나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제는 됐을까 싶어 꺼내보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목소리를 휘감는다. 홍동현 씨는 홍명자 씨의 툭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낸다. 발개진 눈을 껌뻑이며 아내의 손을 꼬옥 잡는다.

 

“아무 검사도 안하고 아이를 세워보더니 뇌성마비라고 하더라고요. 안 믿겨져서 그냥 왔어요. 진단을 못 받아들였죠.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백질연화증이 무엇인지 뇌성마비가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신촌 세브란스가 유명하기에 거기서 MRI 찍고 검사했더니 뇌성마비 맞대요.”

 

두 돌 반이 지나서였다. 드디어 성호의 입원치료가 시작됐다. 홍명자 씨는 의사의 3주 입원 권유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한 달만 치료하면 되는구나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원해서 보톡스 치료를 시작하면 금세 낫는 줄 알았다. 한데 그곳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나고 현실을 깨달았다. 길고 긴 입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이토록 의사 말만 믿을 수 있을까 답답해 보이지만 그녀의 염원을 들여다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믿고 싶은 말이라서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나을 거다, 치료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땐 힘들었는데 지나보니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성호의 상황을 빨리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들의 따뜻한 위로, 친절한 경험 나누기가 없었더라면 성호의 현실을 희망이라는 것으로 포장해서 외면했을 지도 몰라요. 3주 만에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속을 끝냈어요.”

 

그 후로 성호는 여섯 살까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입원 치료에 매달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4년여를 병원에서 지냈다. 엄청난 병원비가 뒤따랐고 그것은 남편 홍동현 씨가 담당했다. 혼자 벌어서 감당하기엔 벅찬 짐이었으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아이 곁에서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생각했고 그러면 출처 모를 힘이 솟아났다.

 

“만만치 않았죠, 병원비. 그래도 괜찮다, 할 수 있다 스스로 다독였는데 그건 아내와 성호가 저를 믿어줬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동사무소에서 긴급자금을 받고 회사에서도 도와주셨거든요. 우리 성호의 소중한 재활치료비를 지원해 주신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모의 바람과 이웃의 응원은 성호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입원치료를 강행할 때는 기대할 수도 없던 일반학교 생활까지 가능케 만들었다. 특수반이긴 하지만 성호는 ‘초등학교’라는 또래집단에서 제 정체성을 치열하게 확립해 나가고 있다.

 

“걱정이 많았죠. 1학년 1학기 때까지는 걱정스러워서 자주 찾아가서 물어봤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적응을 너무 잘 해주더라고요. 그저 고마워요, 이 모든 게.”

 

삼발이 가족, 서로의 버팀목이 되다

 

ⓒ 아름다운재단

 

ⓒ 아름다운재단

 

휴가를 갖지 못한 건 홍명자&홍동현 부부뿐만이 아니다. 아홉 살 난 성호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1시~2시에 수업이 끝나면 활동보조 선생님과 치료를 받으러 움직여야 한다. 그런 후에 집에 도착하면 긴 하루가 끝나버리기 일쑤다. 그런 성호에게 캠프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판타지였다.

 

“아이가 걷지 못하니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게 캠프였어요. 아무리 장애아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걷지를 못하니까 꺼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아는 친구가 작년에 여길 다녀왔는데 굉장히 좋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성호만이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 다른 기운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주저 없이 신청했어요.”

 

아내의 제안을 홍동현 씨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도 ‘이렇게나 좋은 날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외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요즘 들어 부쩍 바깥 활동을 꺼리는 성호를 보며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병원 외래를 다니면서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어느 날은 그걸 따라 하더라고요. 라디오DJ가 되겠다며 녹음도 하고(웃음) 워낙 밝은 아이에요. 자기 주도적이며 리더십이 강하죠. 그런 성호가 밖을 불편해해서 속상했어요. 말은 안 하는데… ‘걷지도 못하는데 가서 뭐해’ 그런 생각이 드나 봐요. 캠프는 굉장히 기다렸어요. 책자도 보고 작년에 다녀온 친구 얘기도 듣고.”

 

다르다는 이유로 위축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성호가 바란 오직 한 가지가 ‘2013 이른둥이 가족캠프’에서 이뤄졌다. 아이의 해맑은 순간을 바라보며 홍명자&홍동현 부부도 오랜만에 모든 경계심을 해제했다. 그 어떤 시선,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우리만 혼자 툭 불거진 게 아니라 다들 저마다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구나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요. 성호에겐 동질감과 다양성을 경험하는 자리이고 우리에겐 휴식처 같아요. 모두가 성장하려고 허물을 벗는 시간이라 기쁘고요.”

 

지난 10년을 찬찬히 되짚는 홍명자&홍동현 부부. 그들은 새삼스레 자신들의 버팀목을 확인한다. 편견에 휩싸인 세상이 부부를 흔들 때마다 버팀목이 돼준 사람이 성호였음을 가슴 깊이 깨닫다. 1박 2일의 캠프를 통해 그들 세 사람은 그렇게 홀로 설 수 없어 서로에게 의지하고 그 힘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자기 자신과 만났다. 10년만의 휴가를 보내며 앞으로의 10년을 꿈꿨다.

 

“앞으로요? 그냥 단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앞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고요. 절실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쥐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호 덕분에 배운 걸 성호와 함께 세상에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우승연  사진. 정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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