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2005년 8월 20일 1,150g으로 태어난 민서 아빠 의 이야기

 

(출처:네이버 이미지)

 

슬픔으로 다가오다

 2005년 8월 무더운 여름, 야근을 마치고 밤 늦게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합류한 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집사람이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어 초 긴장상태였으나 아직 임신주수도 이르고 사무실에서의 스트레스도 날려버릴겸 난 그날밤 그렇게 오랜만의 일탈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겨우 벗어나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했으나 오랜만에 취한 알콜덕분에 내 몸 하나 통제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임신한 아내가 걱정은 되었는지 옆에서 자고있던 중 아내의 계속되는 통증호소로 정신을 차렸다.

“오빠 !, 배가 너무아파 ,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될 것 같애 ”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택시안에서 온갖 나쁜 상상이 교차되고 있었다. 제발...... 그런 상상들이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며 산부인과 병동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양수가 터져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한다는 엄청난 이야기를 신참 레지던트에게 전해 들었다. 정신이 멍해져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레지던트에게 헛소리 하지말라고 욕을 퍼부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내의 울음소리, 나의 흐느낌.... 고통의 시간은 흘러 새벽 6시경 두 아들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두 아들을 보며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마를때까지 정말 한없이 울었다. 그렇게 두 녀석들은 슬픔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전쟁중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들들을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일은 일상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1g이 늘고 줄고 하는 상황에서 웃고 또 한숨지고 하는 일들에 감사했다. 이대로 조금씩 좋아진다면 보통 아이들 처럼 걱정없이 키울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10일간 짧은 만남을 끝으로 큰녀석은 우리곁을 떠났다. 두 녀석이 태어날 때 흘린 눈물이 말라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또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정신 차리자, 민서(가명)가 있으니 더 소중하게 키우면 되‘ 스스로 자위하며 시간이 해결해 주리란 어리석은 생각만 하고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하늘도 무심하게 작은 녀석도 위기를 모면하진 못했다.

동맥관개존증 수술, 백질연화증 후유증으로 보이타, 보바스, 병원입원 집중치료, 한약, 양약 등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건 다 해주려 노력했다. 두달 동안의 인큐베이터 생활, 2년동안의 병원 입원치료를 끝내고 내 아들 민서를 내품에 다시 앉았다. 눈물 대신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해보자, 최선을 다해 한번 해보는 거야’ 대부분 이른둥이 가정에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우리도 피할 순 없었다. 아내의 결혼반지만 남겨두고 집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팔았다. 내 몸도 팔 수 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내 아들의 건강을 조건으로 내가 대신 그 혹독한 현실의 주인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심정보다 더 진실하고 절박했다. 또다시 집중치료는 이어졌다. 스케쥴 관리, 전용기사, 마사지, 인지교육... 이 모든 것을 불평없이 척척 해내는 슈퍼맘 내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했다. 난 바쁘다는 핑계로 방관자로만 일관했다.

나쁜아빠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잃게되는 정말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정말 마음같이 되는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짜증이 났다. 아내와의 잦은 말다툼, 현실에서 도피해 나만의 세계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몇 달을 보내던중 아내가 진지하게 말을 건냈다. “오빠, 나도 건강한애 한번 갖고 싶어, 민서 동생 가지면 어떨까“ 혹 또다시 겪게 될지 모를 고통 때문에 망설였지만 우린 결정을 내렸고 둘째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또 눈물이 흘렀다. 그 동안 고생한 것 보상이라도 해줄 기세로 둘째는 정말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순산한 아내에게 감사하고 건강하게 태어나 말썽꾸러기로 잘 자라고 있는 녀석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두 아들녀석을 키우다 보니 큰녀석 치료를 소홀히 하는것 같아 마음이 항상 무거웠다. 집에 돌아와 녀석들 뒤치다꺼리 하고 나면 허리가 욱씬욱씬 아파왔다. 그래도 집중치료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토록 치료에 매달렸건만 생각처럼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더욱 깊은곳으로 빠져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 제기랄, 왜 하필 나한테.... “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아 머리는 항상 멍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성격도 많이 변했다. 모든걸 회피하였으며 귀찮아하고 아내에게 짜증내고.... 그런 나쁜아빠로 변해 쓴웃음 지우며 거울앞에 서있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2005년 8월경 29주 1일만에 세상에 태어난 내 아들의 최근 스케쥴을 보니 흡사 연애인 같다. 어린이집, 치료실, 학습 등 6살짜리 꼬맹이가 소화하기엔 너무 벅차보이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한마디 불평하지 않고 웃으며 해쳐 나간다. 다른 또래들 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도대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내가 한 일들이 무었이었단 말인가’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부끄러워 화가 치밀었다. 보다 강한 정신무장이 필요했다. 집안의 가장이 너무 나약해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처럼 들리지만 난 내 아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 그래,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 언젠가 웃는 날 있겠지’ ‘ 민서가 날 위로해 주듯 물끄러미 처다본다. “아빠, 힘내세요” 라고 말하는 듯 내게 털레파시를 보낸다. 자식... 역시 사랑스럽고 기특한 내 아들이다. 유난히 춥고 눈 많이 내린 겨울이 지나고 소리없이 봄이 다가왔다. 주변에 봄나들이 간다고 난리들이다.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봄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두아들 품고 출발하면 그뿐이다. 민서가 내게 또 텔레파시를 보낸다. ‘아빠, 사랑해요’ 나도 바로 응수한다 ‘아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이른둥이 수기집 2012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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