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자유 _ 유현&유빈 이른둥이 엄마의 이야기

꽤 괜찮은 자유

유현&유빈 이른둥이 어머니 최미영 씨

 

행복.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배에 힘을 주고 몇 번이고 두 글자를 발음한다. 그뿐인가. 오늘도 어제처럼 “세상에는 좋고 나쁨은 없고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만 있다”던 셰익스피어를 믿기로 한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사람은 신중하며 사려 깊다는 누군가의 격려도 덤으로 새겨 둔다. 마치 의식인 양 치러지는 매일의 첫 순간이다. 최미영 씨는 그렇게 그러모은 긍정적 에너지로 이제 펼쳐질 긴 하루의 단단한 문을 연다. 활짝 열어젖힌 아침엔 언제나 이른둥이 유현이와 유빈이가 있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쌍둥이. 그들을 마주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배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행복’이 올라온다. 주문처럼 되뇌던 행복이 아닌, 아주 자연스런 진심이 담긴 진짜 행복이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쌍둥이. 그들을 마주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배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행복’이 올라온다. ⓒ 아름다운재단

 

귀하게 얻은 쌍둥이, 귀하게 양육하기
서른이 되던 해 남편 유명진 씨와 결혼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다. 동갑내기 부부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어떤 순간도 사랑 하나면 해결됐다. 신혼 초 겪은 두 번의 자연유산도 서로를 보듬으며 이겨냈다.

 

“임신 6주부터 하혈로 고생했어요. 임신한 것도 하혈 때문에 알았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출산 3개월 전부터 입원해서 누워만 있다가 아이를 낳았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뱃속의 아이들을 지켰던 거 같아요. 낯선 곳이라서 더 절실하게요.”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간 중국. 눈과 귀는 물론 입도 설은 그곳에서 쌍둥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음식이 맞지 않아 몸은 비쩍 말라가고 하혈은 멈추지 않고… 마음 같아선 한국에 들어오고 싶었으나 그나마도 건강이 따르지 않아 실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8개월여를 지낸 어느 날, 유현이와 유빈이가 태어났다. 인큐베이터 신세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최미영&유명진 부부는 안도했다.

 

“우여곡절이요? 왜 없었겠어요, 32주 만에 나온 아이가 그 병원에서 처음이었는데. 그래도 50일이 지나니 괜찮더라고요. 폐가 약해서 걱정했는데 그것도 잘 치료됐다고 했고.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걱정이 됐어요. 9개월이 지났는데도 기지도 못하니까. 그래서 전체 검사를 다시 받았더니 두 아이 모두 뇌병변 1급이 나오더라고요.”

청천벽력 같은 순간이었다. 치료 받은 다른 애들이 금세 걷기에 유현이, 유빈이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유현이, 유빈이는 달랐다. 중국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받기가 어려웠다. 그제야 최미영 씨는 중국에서의 꿈을 접었다. 10년 정도 사업을 키운 뒤 쌍둥이에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선사하리라는 포부,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던 미래를 수정했다. 그리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오로지 아이들의 치료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처음엔 간병인을 썼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어요. 남편은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저는 간병을 시작했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 때 살이 38kg까지 빠졌어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돈도 참 걱정이었죠. 외국에서 의료보험이 안 되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와서 힘들 때였거든요. 참 막막했는데 고맙게도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알게 됐어요. 큰 힘이 됐죠.”

 

 

최미영 씨는 중국에서의 꿈을 접었다. 10년 정도 사업을 키운 뒤 쌍둥이에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선사하리라는 포부,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던 미래를 수정했다. ⓒ 아름다운재단

 

 

유쾌한 일탈, 다솜이 가족캠프
어려움이 첩첩이 쌓인 병원생활은 순간순간 어두웠다. 캄캄한 그곳에서 문득 찾아드는 ‘혼자’라는 생각이 두렵기도 했다. 바로 그 순간 한 줄기 빛 같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와 조우했고, 최미영&유명진 부부는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부모의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닿았는지 쌍둥이들도 차츰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뇌병변 손상이 심했어요. MRI를 본 의사 선생님들이 다 비관적이었죠. 인지능력이 아주 떨어질 지도 모른다, 평생 누워만 있을 수도 있다 해서 낙담도 컸고. 한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거예요. 의사소통도 되고 혼자 앉게도 되고. 남들 보기엔 정말 미비한, 별 것 아닌 변화가 저희 부부에겐 기적처럼 여겨졌어요. 희망이었죠.”

 

하루 한 번, 아주 소소한 움직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 건 지난해 이른둥이 가족캠프를 다녀온 이후부터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병원생활만 하느라 답답했던 유현이, 유빈이가 가족캠프에서 보여준 자유로움이 최영미 씨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쌍둥이에게 가족캠프는 유쾌한 일탈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다른 비전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건 유현이, 유빈이에게 힘들 거야’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자신의 편견이었음을 알아챈 까닭이었다. 2012년 이른둥이 가족캠프에 다시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재밌고 신났는지 아직까지도 작년 일을 다 기억해요. 선생님 이름도 안 잊어버리고 뭘 했고 어떻게 놀았는지 세세하게 말이죠. 아직 걷지 못해서 여기저기 데려가지 못했는데 그날은 아주 특별한 외출이었던 셈이에요. 우리 부부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뭐랄까. 7년여 만에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어요. 행복하다고 중얼거릴 만큼 설레고… 참 오랜만에요.”

 

 

환하게 웃는 유현, 유빈 이른둥이들 ⓒ 아름다운재단

 

 

잃어버린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기
이른둥이 가족캠프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이름표를 만들어달라던 유현이, 유빈이. 마치 캠프에서 그랬던 양 이름표를 붙이고는 즐거워하는 쌍둥이를 보며 최미영 씨는 그동안 간과했던 ‘일상’을 생각했다. 병명과 증상, 재활에 신경 쓰느라 정작 ‘일곱 살 아이들’을 잊고 지냈구나, 싶었다. 어디 일곱 살 뿐이겠는가. 여섯 살, 다섯 살, 네 살…. 최미영&유명진 부부의 일상도 더불어 다가왔다.

 

“프로그램을 따라가기가 벅차지만 정신없이 막 따라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절로 웃음이 나요. 그런 게 행복했어요, 이게 자유구나 중얼거리게 되고. 홀가분한 느낌이요! 그건 단순히 아이들을 누군가 함께 돌봐줘서가 아니었어요. 아이들을 좇던 눈이 자연과 이웃, 내 자신에게로 향하면서 가능해진 거예요.”

 

개인의 욕구가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나는 유현이, 유빈이 엄마다’를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던 최영미 씨가 이른둥이가족 캠프에서 얻은 건 ‘무엇도 괜찮아, 백번이고 괜찮아’. 몰래 삼키던 울음을 밖으로 토해내도 괜찮고 주위 시선 상관없이 깔깔 웃어도 괜찮은, 유빈이, 유현이 형제가 조금 서툴러도 괜찮은 곳이 바로 다솜이 가족캠프였다. 병원이라는 무균실에서 보호받는 아이들이 사회로부터 상처받을까봐 노심초사하던 그녀에게 ‘괜찮아’는 꽤 괜찮은 주문이었다.

 

“괜찮아”라고 발음하며 어쩌면 그녀는 행복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두 아이 모두가 평범한 아이처럼 걷고 뛰고 하는, 모두가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한정된 상황을 만들기는 여전히 어려울 테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 자기에게 주어지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건 의외로 쉬울 수 있다고. 그래서 최영미 씨는 이른둥이 가족캠프 참가자, 아니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한다. 따뜻한 울림을 가득 담아 진심으로 괜찮은 ‘괜찮아’를 후기인 양 선사한다.

 

우리, 모두 괜찮으니까!

 

 

아이 모두가 평범한 아이처럼 걷고 뛰고 하는, 모두가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한정된 상황을 만들기는 여전히 어려울 테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 자기에게 주어지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건 의외로 쉬울 수 있다고. ⓒ 아름다운재단

 

* 유현, 유빈 이른둥이들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로부터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2 Responses

  1. 지니
    눈물나요. ㅠ.ㅠ
  2. 달리아란
    건강하게 쑥쑥 자라렴!